성인용 글이 될 예정입니다. 샘플은 수위가 없습니다. 스팍커크 샘플 글은 완성하는 대로 올리겠습니당
실종되어 우주에 포류되었던 맥코이가 구출되면서 겪는 커크와의 이야기입니다
키워드: 포류 약앵스트
트리거 워닝이 필요한 소재는 본 원고에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우주.
마지막 개척지.
레너드 맥코이는 홀로 생각해보고는 했다. 일 분 일 초마다 쉼없이 팽창해나가는 우주를 개척하는
일에 의미가 있는지 반추해 보았다. 우주에 끝이 없다면, 숨쉬듯
뻗어나가는 공간을 개척하는 일 또한 끝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끝없이 새카만 창 밖. 점처럼 흩어진 반짝이는 행성들. 그마저도 곧 빛의 속도로 영영 멀어지고야
마는. 레너드는 그 생각의 모든 끝에 떠오르는 질문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우주는 영원히 팽창하며,개척과 탐험 또한 영원한 과업이었다. 그래서 제임스 티베리우스 커크는 평생 우주를 헤맬 것이었다. 그의
시간 내에서는 영원하도록, 빛의 속도로 암흑을 표류할 것이다. 실낱같은
빛을 찾으려, 발견한 적 없는 문명을 찾기 위해 떠돌것이다.
거기에 레너드 자신이 포함되어 있는지 그는 감히 단정 짓지 못했다.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하고 흔들리기 쉬운지 알아서였다. 공고하게 법으로 옭아 맨 관계도 시간과 거리에는 이기지
못했다. 천륜으로 이어진 피붙이도 몇 광년이 떨어진 거리를 넘어 늘 사랑하기에는 힘이 든다. 무게가 다른 감정은 이윽고 기운다. 하물며 남이다. 그렇다. 제임스 커크와 레너드 맥코이는 남이었다. 친구이자 동료였고 사선을 몇 번씩이나 같이 넘나든 사이였음에도 남이었다. 법적으로도, 유전적으로도 그 어떠한 연결이 없었다. 아주 감상적이고 또 그만큼
여린 관계였다. 누군가가 등을 돌리고, 돌아보지 않고 쭉
걸어나가기만 한다면 영영 끝나는 관계.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서 의미가 있는 관계. 레너드는 느리게 눈을 깜박인 후,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조도 0. 새카만 어둠이 쿼터 안을 메웠다. 레너드는 웅크려 잠을 청하며 생각을 갈무리해 접었다. 금세 잠들
것이었다. 늘 그러했듯, 악몽을 꿀 것이다. 우주에 오고 나서부터는 늘 그랬다.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
레너드는 스스로가 꽤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주 비꼬거나 불평했다. 단점을 찾아내는 일을 특출나게 잘 했으며, 위험한 일에는 질색을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우주가 싫었다. 단순히 싫은 것이
아니라 혐오했다. 광대한 만큼 위험했고, 위험한 만큼 두려웠으며
두려운 만큼 혐오했다. 부정적인 감정만이 가득했다. 그럼에도
레너드는 우주에 있었다. 제임스 커크가 있어서였다. 그가
우주에 있어서 레너드 또한 우주에 있기를 택했다. 자포자기로 수송선에 몸을 싣던 그 날부터 지금 이
날 이때까지도, 레너드는 단 한가지 사실에 이견이 없었다. 그는
커크를 사랑했다. 홀로 묵묵히, 그 누구에게도 내색하는 일
없이 줄곧 사랑해왔다. 그래서 굳이 동행하지 않아도 되는 탐사에도 동행했다. 잔업이나 과로를 해서라도 시간을 만들고, 작동 과정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구역질이 나는 수송 패드 위에 선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 모르는 행성에 발을 딛는다. 시야 끄트머리에 걸리는 어두운 금발. 들뜬 나머지 톤이 높아지는
목소리. 그런 것 때문에 그랬다. 그래서 이번에도 투덜거리며
따라 나섰다. 네가 있어야 하는 거 알잖아, 본즈. 절대로 이길 수 없는 말을, 표정을 하고서는 웃는 그의 함장 때문에.
*
이번에 엔터프라이즈 호가 도착한 행성은 생각보다도 훨씬 위험한 곳이었다. 화학식으로 나타낼 수
있을지조차 모르는 독을 뿜는 식물과 적의를 드러내는 동물이 곳곳에 가득했다. 가장 불행한 것은 그 모든
것을 알아채는 것이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짐, 돌아가야
해. 여긴 위험해. 밭은 숨. 행성 코어의 탐사를 위해 엔터프라이즈 호에서 가장 멀리 있던 커크는 돌아오는 속도가 더뎠다. 레너드는 불안으로 널뛰는 제 심박에 귀가 멀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커크를 찾아 뛰었다. 수송 좌표 선정을 위해 움직이지 말라는 스코티의 말이 간헐적으로 끊어져서
들렸다. 행성의 자기장에 이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레너드는 기어코 커크를 찾아 내었다. 피를 많이 흘렸는지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발을 질질 끌며 걷는 모습에 심장이 철렁 떨어졌다. 커크의 낯빛이
밀랍같았다. 커크는 종내엔 많이 걷지도 못하고 무릎 부터 풀썩 꺾여 쓰러지고야 말았다. 레너드는 속이 찢어지는 기분으로 커크의 어깨를 쥐었다. 빌어먹을, 짐. 정신 차려! 몇
번이나 불러도 그저 느리게 떨리는 눈꺼풀. 레너드는 커크가 쥐고 있던 신호기가 부서져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레너드는 자기 품을 뒤져 신호기를 커크에게 쥐여 주었다. 눌러, 짐. 버튼 누르라고. 그러나
커크는 거부했다. 점차 빛이 흐려지는 눈동자가 말하는 것은 분명했다.
그럼 너는? 그러나 레너드는 개의치 않았다. 커크의
시신만은 두 번 다시 보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 커크의 손 안에 제 신호기를 쥐여 주고, 버튼을 눌렀다. 동시에 행성 전체가 흔들렸다. 내핵이 날뛰는 것 같은 지진이었다. 땅이 단번에 깊게 갈라지고 온
방향으로 요동친다. 레너드는 강한 충격에 몸이 떠밀렸다. 뇌진탕으로
어지러운 시야에 커크의 몸이 빠르게 광자로 분해되는 것이 보였다. 스코티, 혹은 체콥이 커크의 신호를 잡아내어 수송중인 것이 분명했다. 다행이었다. 레너드는 이윽고 정신을 잃었다. 곧바로 우주의 맨 얼굴과 같은 새카만
색이 레너드의 의식을 삼켰다.
*
레너드가 다시 눈을 떴을 때엔 주변 모든 환경이 엉망으로 어그러진 상태였다. 내핵 코어의 핵반응으로
인한 급격한 지각 변동 및 지진으로 전혀 달라진 행성이 그를 맞이했다. 독이 있을지언정 식물이 자라고, 이를 드러낸다고 한들 동물이 살던 행성은 이제 죽음만이 가득했다. 온
사방에 동식물의 시체와 바닥 없이 쩍쩍 갈라진 마른 땅만이 존재했다.레너드는 그 모든 죽음 사이에서 혼자 살아 있었다. 레너드는 뇌진탕으로 아직 어지러운 머리와 내상으로 쑤시는 몸을 이끌고 걸었다.
엔터프라이즈 호가 정박해 있던 자리엔 부서져가는 땅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엔터프라이즈
호는 떠나고 없었다. 대신 탐사 매뉴얼 상 엔터프라이즈 호 근처에 정박키로 되어있는 비상용 소형 수송선이
한 대 남아 있을 터였다. 그는 머리가 먹먹할 정도의 고통만이 가득한 몸을 질질 끌고 거기까지 걷기로
했다. 고통으로 질질 끄는 발 끝마다 죽은 동물 혹은 식물이 채였다.
죽어 널부러진 동물들은 전부 종이 비슷하고 크기가 작은 편이었다. 나이가 어린 것이다. 짧은 주기를 두고 속에서부터 끓어 넘치는 행성임을 증명하는 시체 더미였다. 레너드는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한 시체와 흙, 식물의 잔해를 지나 걸었다. 시커멓게
끝조차 없이 갈라진 행성의 틈을 마주하면 한참을 돌아 걸어야만 했다. 시간의 짐작이 어려웠다. 자전의 주기가 지구와는 한참 다른 곳이었다. 시간의 개념 없이 늘
눈부시고 메마른 대기. 살갗이 버석거리도록 건조했다. 입
안에서는 먼지와 피 맛이 났고, 시야는 부얬다가도 생존의 위기를 앞두고 중간중간 선명하게 타올랐다. 아드레날린이 억지로 일으켜 세운 몸뚱이는 비틀거리면서도 걸었다. 이윽고
반쯤 나뒹굴고 있는 수송선을 발견한 레너드는 긴장이 풀려 잠시 털썩 고꾸라졌다. 도저히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거기서부터는 기듯이 포복해서 수송선에 다다랐다. 지진의 여파로 지반에 반쯤 파고든 수송선에
타는 일 또한 끔찍한 노동이었다. 생존. 그 단어만이 머릿속에
벌건 불을 켜고 일렁였다.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속에서부터 내질러지는 비명을 몇 번이나 뱉고서야 수송선에
몸을 구겨넣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행성 내핵의 반응이 마무리되지 않은 모양인지, 다시금 지반이 우릉거리기 시작했다. 레너드는 억지로 팔을 들어 대충
조종반을 누르고 두드렸다. 오토 모드. 당장 출발해, 제발…. 레너드의 바램대로 수송선은 육중한 몸을 뒤채더니 곧 떠올랐다. 중력을 억지로 거스르는 힘에 고개가 풀썩 꺾였다. 행성의 내핵은
다시금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레너드는 다시금 정신을 잃었다.
*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레너드는 우주에 있었다. 그저
고요히 나아가는 긴급 수송선 안, 그는 혼자였으며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레너드는 비상 의료함까지 기어 가서 진통제가 담긴 하이포를 스스로 주사한 후,
내상 치료용 고주파 기계를 몇 시간이나 온 몸에 문질렀다. 그리고 나서는 하루치 칼로리와
영양소가 담긴 하이포를 정맥주사했다. 그리고 나서야 그는 살아있음을 느꼈다. 고통 때문에 억지로 자각하는 생존이 아닌, 실로 살아남았음을 절감했다. 그제서야 레너드는 밖에 펼쳐진 우주를 바라보았다. 점 같은 밝은
별들이 흩어지기도, 아름다운 성운이 지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묵묵히 지나갈 뿐이었다. 레너드는 곧 수송선의 좌표가 시시각각 심한 폭으로 바뀜을 알아채었다. 표류. 아까는 차마 느끼지 못한 절망이 왈칵 그를 메웠다. 레너드 맥코이는 우주가 매 순간, 매 초마다 끝없이 팽창함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 순간마다 커크와 멀어지고 있음 또함 알았다. 레너드는 덜덜 떨리는 손바닥을 들어 넓은 창에 느리게 대어 보았다. 창
밖에 무한하게 가득 흘러가는 우주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레너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절망할 따름이다.